2007년 04월 13일
[소설]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中
'혜규는 자신이 포기한 것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아이와 남편, 자기실현, 작은 정원이 딸린 조그만 단층 주택, 무릎을 덮는 윤기나는 밍크코트나 변하지 않는 진짜 보석들, 생일날이나 크리스마스의 카드들과 선물들, 여자 친구와의 허심탄회한 우정, 영원까지 이르는 진정한 사랑, 고요한 포만감이 주는 정숙하고 생기로운 삶, 이웃 혹은 어떤 그룹과의 지속적인 친교. 그것은 감상이 아니었다. 차라리 세상살이와 타자와 자신에 대한 각성이고 결심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심장 소리 같은 것.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을 때, 삶을 위해 심장이 온 힘을 다해 북을 치는 것 같았다. 심장은 기계처럼 그저 규칙적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팥죽 솥처럼 끓고 있었다.
북 쳐, 북 쳐, 북 쳐......
혜규에겐 그렇게 들렸다.
북 쳐, 북 쳐, 북 쳐......
아무도 모르게, 너무나 고독하고 격렬하게 뛰고 있어 힘내라고 울음이 섞이는 외침으로 응원하며 스스로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고 싶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심장이 그토록 터질듯이 뛰고 있으니 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때 혜규는 단지 심장이 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눈물이 흘렀었다. 동맥을 끊고 살아난 직후였다. 북 쳐, 북 쳐, 북 쳐...... 지금 이대로도 생은 충분했고, 이대로의 자신에게 충실해야 했다. 북 쳐, 북 쳐, 북 쳐, 아무도 모르게, 고독하게 격렬하게...... 그렇게 이유는 모르지만, 혜규는 살아있기로 했다.'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불가능으로 둘러쌓인 섬들 中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르지. 너 같은 년까지도 실존이 문제가 되느냐고.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 늘 하는 비웃음이지. 너 같은 게 그냥 사는 날까지 살면 되지. 삶의 의미니, 이유니, 가치니 그런건 왜 묻느냐고. 그런데 언니, 참 이상하지. 자꾸만 그런 질문이 나를 들볶는거야. 그래서 알았어. 누구나, 아무리 못난 사람도, 그러니까 지렁이조차도 산 것은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애쓰는 한은 왜 사는가를 물으며 실존적 고뇌를 할 거라는 걸. 그게 생명이라는 거."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내가 바이킹을 타는 이유는 中
'어쩌면 거짓말이 전혀 없는 사랑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상대에게, 스스로에게. 사랑은 눈을 가린 장님 놀이 같은 성격이 분명하게 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절대적 가치를 지닌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차 없는 미움보다 오히려 관대한 사랑 속에서 진실은 오리무중이 되기 쉬운 것이다. 진실만을 요구하는 사랑이야말로 그 불가능성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거짓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거짓에 점유되어 버린 사랑은 공허하고 누추한 것이다. 열정과 진실과 관용과 거짓의 적절한 비율과 종속 관계가 진정으로 사려 깊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얼마나 난해하고 진지하며 허허로운 것인지 거의 지성의 한 종류이거나 변칙적으로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나비의 일종 같다. 그러니 사랑이란 얼마나 난감한가? 연약해서 꽉 쥘 수도 없고 풀어 두자니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아 두 사람이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더구나 시간이라는 저항에 끊임없이 마모되면서 말이다. 사랑이란, 어쩌면 인생의 총체적 자본을 남김없이 그 입속에 쏟아 붓고도 회수할 길이라곤 업이 흘려보내야 하는 속절없는 사업인지도 모른다.'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진실과 거짓의 레이스 조각 中
"영혼이라는 말은 그 속에 존재의 복수를 함유한 단어일 거야. 사랑이 없다면 우린 모두 저마다 혼자인 이교도들이야. 소통이 안 돼. 저마다 다른 것을 믿고, 다른 사람의 신념을 사이비라고 일축하지. 난 내가 믿는 것을 세상에 단 한 사람, 혜규 너와 함께 믿고 싶어. 우리가 한 영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이 삶이 되지 못한다 해도, 그래서 천국의 문 앞에서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는 구름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안개와 눈과 비처럼, 늘 우리 곂을 이렇게 서성이며 감고 도는 것이라 해도, 우리가 하나의 영혼으로 이 세상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과 믿고 싶어."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에필로그 中
어쩌면 심장 소리 같은 것.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을 때, 삶을 위해 심장이 온 힘을 다해 북을 치는 것 같았다. 심장은 기계처럼 그저 규칙적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팥죽 솥처럼 끓고 있었다.
북 쳐, 북 쳐, 북 쳐......
혜규에겐 그렇게 들렸다.
북 쳐, 북 쳐, 북 쳐......
아무도 모르게, 너무나 고독하고 격렬하게 뛰고 있어 힘내라고 울음이 섞이는 외침으로 응원하며 스스로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고 싶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심장이 그토록 터질듯이 뛰고 있으니 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때 혜규는 단지 심장이 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눈물이 흘렀었다. 동맥을 끊고 살아난 직후였다. 북 쳐, 북 쳐, 북 쳐...... 지금 이대로도 생은 충분했고, 이대로의 자신에게 충실해야 했다. 북 쳐, 북 쳐, 북 쳐, 아무도 모르게, 고독하게 격렬하게...... 그렇게 이유는 모르지만, 혜규는 살아있기로 했다.'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불가능으로 둘러쌓인 섬들 中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르지. 너 같은 년까지도 실존이 문제가 되느냐고.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 늘 하는 비웃음이지. 너 같은 게 그냥 사는 날까지 살면 되지. 삶의 의미니, 이유니, 가치니 그런건 왜 묻느냐고. 그런데 언니, 참 이상하지. 자꾸만 그런 질문이 나를 들볶는거야. 그래서 알았어. 누구나, 아무리 못난 사람도, 그러니까 지렁이조차도 산 것은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애쓰는 한은 왜 사는가를 물으며 실존적 고뇌를 할 거라는 걸. 그게 생명이라는 거."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내가 바이킹을 타는 이유는 中
'어쩌면 거짓말이 전혀 없는 사랑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상대에게, 스스로에게. 사랑은 눈을 가린 장님 놀이 같은 성격이 분명하게 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절대적 가치를 지닌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차 없는 미움보다 오히려 관대한 사랑 속에서 진실은 오리무중이 되기 쉬운 것이다. 진실만을 요구하는 사랑이야말로 그 불가능성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거짓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거짓에 점유되어 버린 사랑은 공허하고 누추한 것이다. 열정과 진실과 관용과 거짓의 적절한 비율과 종속 관계가 진정으로 사려 깊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얼마나 난해하고 진지하며 허허로운 것인지 거의 지성의 한 종류이거나 변칙적으로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나비의 일종 같다. 그러니 사랑이란 얼마나 난감한가? 연약해서 꽉 쥘 수도 없고 풀어 두자니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아 두 사람이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더구나 시간이라는 저항에 끊임없이 마모되면서 말이다. 사랑이란, 어쩌면 인생의 총체적 자본을 남김없이 그 입속에 쏟아 붓고도 회수할 길이라곤 업이 흘려보내야 하는 속절없는 사업인지도 모른다.'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진실과 거짓의 레이스 조각 中
"영혼이라는 말은 그 속에 존재의 복수를 함유한 단어일 거야. 사랑이 없다면 우린 모두 저마다 혼자인 이교도들이야. 소통이 안 돼. 저마다 다른 것을 믿고, 다른 사람의 신념을 사이비라고 일축하지. 난 내가 믿는 것을 세상에 단 한 사람, 혜규 너와 함께 믿고 싶어. 우리가 한 영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이 삶이 되지 못한다 해도, 그래서 천국의 문 앞에서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는 구름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안개와 눈과 비처럼, 늘 우리 곂을 이렇게 서성이며 감고 도는 것이라 해도, 우리가 하나의 영혼으로 이 세상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과 믿고 싶어."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에필로그 中
# by | 2007/04/13 00:48 | 책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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